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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17) 손현순 교수 약사공론 시론 집필 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03 15:22
조회
2245
 

기술혁신보다는 진달래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사회약학실 손현순 교수




주로 낮은 산자락에, 그것도 너무 진하지 않은 분홍빛으로, 때로는 흩어진 듯 때로는 흩어지지 않은 듯 피는 그 느낌 때문에 나는 진달래를 가장 좋아한다. 누군가가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려준다면 그보다 더 황홀할 수는 없으리라. 

추운 겨울을 잘 견뎌냈노라고 무언의 말을 전하는 봄꽃들, 대견하기만 한 그들이 있어 우리는 또 한 해를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눈부신 꽃들과 그 꽃들의 배경이 된 투명한 하늘까지 마음속에 마저 끌어다 놓는 사이, 살랑살랑 봄바람과 몇 줄기 봄비는 수많은 꽃잎들을 흩어 뿌리고 말았다. 봄은 꽃이다. 그리고 꽃은 우리 삶을 은유한다. 이 땅에서 한 번 피고 지는 우리의 유한한 시간을 읽어보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개인의 자유의지이든 아니든 살아있는 우리는 역사를 쓴다. 멈춰 서있지 않는 역사는 오늘이라는 시간 위에 우리를 던져 놓고, 어제는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게 하고 어제는 몰랐던 것을 아주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라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해야만 하는 역사는 그래서 언제나 버겁다. 

지금도 우리를 버겁게 하는 것들이 많다. 그 중 단연 으뜸은 모든 분야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이 아닐까 한다. 그 동안의 인류의 기술발전을 산업적 관점에서 1,2,3,4차로 구분하면서 우리가 맞이할 미래를 적확히 표현해서일까? 이제 이 단어는 다보스포럼참가자가 아닌 우리 일반인들도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시대적 상징어가 된 것 같다. 

그러나, 끝없는 기술발전에 우리는 그저 환호해야 할지, 세계화와 시장개방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국제민간회의인 다보스포럼에서 다뤄진 4차 산업혁명 주제를 그것이 시대흐름이 되었으니 그저 잘 따라가며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될지, 범세계적 경제문제를 논한다는 포럼이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건지, 인류 보편적인 삶의 질과 행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가고는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가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포럼에서 언급한 4차 산업혁명 주제의 본질은 산업과 연계될 수 있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을 미래 기술발전의 중점 방향으로 선택하겠다는 선포이며, 이는 세계 패션업계 리더들이 그들이 만들어낸 패션트렌드를 유명패션쇼를 통해 소개하고 그러한 트렌드로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그 곳에 우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방향을 좇아가기 위해서 각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4차 산업시대에는 빅데이터 연결성이 기본이므로 빅데이터를 열심히 만들어 내고, 개방적이고 협업을 잘 할 수 있는 혁신가를 양성하기 위해 융합적 학문으로 교육 방향을 정하고, 정부 또한 그러한 방향에 맞추어 업무방식을 바꾸라고 말이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미래를 대비할 조언 아닌 숙제를 던지고 있다. 머지않아 고용변화가 올 테니 빠르게 대처하라고, 그러려면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되 두려워하지는 말고 끊임없이 도전해서 기회를 잡아보라고 말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혁신의 또 다른 표현이다. 노동을 일반적인 수준으로 이해하는 우리에게는 기술혁신이 실업으로 읽혀지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실업을 에둘러 표현한 단어로 해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미래를 대비하라는 숙제를 개개인이 풀어낼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고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가 파생시킨 모든 분야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또한 불편하다. 제3자가 던져준 숙제를 떠안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를 떠받들면서 인간의 존엄이 흔들리고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존재감을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면, 지금의 방향성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다가가는 것이기는 한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생명체에 다름 아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적 삶이기 때문이다. 

숨 쉬는 생명을 품은 자연은 분명 그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아직 지지 않은 진달래를 보러 나가려 한다.